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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g with the Gods

매화 지는 밤

ixxrax 2018. 8. 29. 14:48

 

♬ 그래도 넌 나를 택했을까 _ 불꽃심장

 

 

 

 

 

  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 나태주

 

 

 

 

 

 

 

  ***

 

 

 

 

 

 

 

  "차사님!"

 

  맑은 목소리. 정신을 뒤흔드는 청량한 음성에 해원맥은 눈을 떴다. 흐린 눈길 사이로 또렷이 검은 두 눈과 머리칼이 들어차자 내내 괴로웠던 꿈자리가 기억의 저편으로 서서히 잦아든다. 비죽이 올라가는 양 입꼬리에 잠기운도 달아난다.

 

  "겨울만 오면 이러시네요."

 

  그러게, 목이 잠겨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도 덕춘은 알아들은건지 마냥 웃어버린다. 잠을 자지 않아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미 죽었으나 이젠 죽지 않는 몸뚱이를 하고서도 해원맥은 눈만 내린다싶으면 눈을 감았다. 서서도, 기대서도, 앉아서도, 누워서도.

 

  "곧 망자의 거처입니다. 얼른 가요."

 

  소복이 쌓인 눈을 밟는 어두운 털신을 따라 해원맥 저도 걸음을 떼어본다. 밟아도 소리가 나지 않고, 뭉쳐 쥐어도 쌓인 그대로인 새하얀 눈이 어찌 보기만 하면 이리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 찧어놓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멀리 산봉우리와 가까이 계곡을 한참 덮은 그것들을 보며 막연히 생각해보았을 뿐이다. 내 전생에 눈에 파묻혀 죽기라도 한 것인가.

  깊은 생각도 아니었다. 매번 기억 언저리의 끝에 닿을 듯 말 듯, 헤매다 깨어날 뿐이니. 해원맥은 긴 다리에 힘을 주고 덕춘의 곁으로 바짝 붙었다. 툭하면 자리를 비우는 강림과 달리 언제고 곁에 서서 해사하게 웃는 작은 차사놈을 보면 심란했던 마음이 금새 가라앉는다. 어깨에 풀썩, 제 긴 팔을 내려놓듯 두른 해원맥은 가자, 빙글 웃으며 덕춘의 볼을 살짝이 꼬집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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